장례식장 비용을 치러야 하는데 마침 고인의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습니다. 공과금 자동이체도 고인 통장에서 계속 빠져나가고, 병원비 잔금 청구서도 와 있습니다. "어차피 가족 돈인데 고인 계좌에서 꺼내 쓰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피상속인 명의의 돈에 손을 대는 일은 생각보다 큰 법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이미 써 버린 뒤의 수습이 아니라, 고인 계좌에 손대기 전에 알아 둘 원칙과 순서를 정리합니다. 처분행위와 단순승인의 관계, 장례비에 관한 판례, 승인·포기를 정하기 전의 관리 의무, 금융회사 절차를 따르는 이유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사망과 동시에 그 돈의 주인이 바뀝니다
민법 제1005조에 따라 고인의 예금은 숨진 순간부터 이어받는 사람들에게 넘어갑니다. 여럿이 함께 이어받는다면 나누기 전까지는 공유 상태입니다(제1006조).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거나 카드를 갖고 있다는 사정은 이 결론을 바꾸지 못합니다. 한 사람이 꺼내 쓴 돈은 결국 다른 가족과 정산해야 할 문제가 되고, 경우에 따라 다툼의 불씨가 됩니다.
처분행위를 하면 단순승인으로 봅니다
더 큰 문제는 승인과 포기의 선택지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민법 제1026조 제1호는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처분하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봅니다. 단순승인은 고인의 권리와 의무를 제한 없이 이어받는 것이어서, 나중에 빚이 더 많다는 사실이 드러나도 원칙적으로 포기를 고를 수 없게 됩니다.
생활법령정보는 처분행위의 예로 상속재산인 부동산을 팔고 등기를 넘겨준 경우, 상속재산인 주식을 판 경우, 상속재산인 예금으로 자신의 빚을 갚은 경우를 듭니다. 고인 계좌에서 돈을 꺼내 내 대출을 갚거나 생활비로 쓰는 일이 바로 마지막 예에 가깝습니다. 피상속인에게 빚이 있는지 아직 모르는 단계라면, 이런 행동 하나가 뒤의 선택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먼저 기억하세요.
장례비는 따로 보는 판례가 있습니다
상속에 관한 비용은 상속재산에서 지급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제998조의2). 대법원은 장례비용도 고인이나 상속인의 사회적 지위, 그 지역의 풍속에 비추어 합리적인 금액 범위라면 이 비용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그 사건에서는 고인의 보험 해약환급금을 받아 장례비로 쓴 상속인들이 한정승인 재산목록에 그 돈을 적지 않았는데, 그 돈은 합리적인 범위의 장례비로 다 쓰여 남은 것이 없으니, 목록에서 빠졌다고 해서 채권자를 해치려는 고의적 누락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30968 판결).
이 판례가 장례비라면 얼마든지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합리적인 범위'라는 조건이 붙어 있고, 어떤 지출이 그 범위에 드는지는 사건마다 판단됩니다. 장례식장 계약서와 영수증, 지출 내역을 빠짐없이 남겨 두어야 나중에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손대기 전에 밟을 순서
- 금융회사에 사망 사실을 알리고, 그 회사가 정한 상속 예금 지급 절차와 필요 서류를 안내받습니다. 카드나 비밀번호로 먼저 인출하지 않습니다.
- 고인 계좌에 걸린 자동이체 목록을 확인합니다. 관리비·공과금·보험료처럼 계속 빠져나가는 항목은 무엇인지 적어 두고, 해지나 변경은 금융회사 안내에 따릅니다.
- 재산과 빚의 조회 결과가 나올 때까지 큰 지출은 미룹니다. 빚이 재산보다 많을 가능성이 있으면 승인·포기 판단이 먼저입니다.
- 꼭 써야 하는 돈이 있다면 용도와 금액, 날짜를 기록하고 함께 이어받을 가족에게 미리 알립니다.
단순승인이나 포기를 하기 전까지 상속인은 자기 재산을 관리하는 것과 같은 주의로 상속재산을 관리해야 합니다(제1022조). 재산을 지키는 데 법원의 도움이 필요하면 이해관계인이 가정법원에 보존에 필요한 처분을 청구하는 길도 있습니다(제1023조).
금융회사 창구에 들고 갈 서류 묶음
필요한 서류는 금융회사마다, 찾으려는 금액과 창구에 가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므로 방문 전에 전화나 누리집으로 목록을 받아 두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다만 어느 회사든 결국 확인하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계좌 주인이 숨졌다는 사실, 그리고 창구에 온 사람이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입니다.
- 사망 사실 — 피상속인 기준 기본증명서에 사망 연월일시가 나옵니다.
- 이어받는 사람의 범위 — 피상속인 기준 가족관계증명서(상세)로 배우자와 자녀를 확인합니다. 2008년 이전의 가족 기록이 필요하면 제적등본을 함께 요구받을 수 있습니다.
- 신청인의 신분과 권한 — 가족 여럿이 함께 이어받는 경우 다른 가족의 동의나 위임, 분할을 마친 협의서를 요구받을 수 있으니 창구에 가기 전에 확인합니다.
이 서류들은 가정법원이나 세무서에서도 반복해서 쓰이므로 처음 뗄 때 여러 부를 준비해 두면 편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고인 계좌로 고인의 병원비를 정리하는 것도 처분행위인가요?
A. 상속재산으로 고인의 빚을 갚는 일이 어떻게 평가될지는 사정에 따라 판단이 갈릴 수 있습니다. 빚이 많을 가능성이 있다면 지출 전에 확인하고, 이미 냈다면 영수증과 내역을 보관하세요.
Q. 한 가족이 몰래 돈을 꺼냈다면 다른 가족의 선택도 막히나요?
A. 단순승인으로 보는 것은 처분행위를 한 그 상속인의 문제입니다. 다른 가족은 각자 기간 안에 한정승인이나 포기를 정할 수 있지만, 꺼낸 돈의 정산은 따로 남습니다. 고인이 맺은 계약과 함께 정리할 항목은 계약과 보증 문서에서 확인하세요.
정리
고인 계좌의 돈은 사망과 동시에 이어받는 가족 모두의 몫이 되고, 함부로 꺼내 쓰면 포기의 길이 막힐 수 있습니다. 금융회사 절차를 먼저 밟고 지출은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이 가장 안전합니다. 나머지 질문은 첫 화면에 모아 두었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의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근거: 민법 제998조의2·제1005조·제1006조·제1022조·제1023조·제1025조·제1026조 제1호 [시행 2026. 3. 17.][법률 제21454호] — 국가법령정보센터 2026-10-20 확인 / 대법원 2003. 11. 14. 선고 2003다30968 판결(장례비용과 상속비용) — 국가법령정보센터 판례 2026-10-20 확인 / 처분행위 예시 —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상속 단순승인의 개념 및 방법」(2026-09-30 기준) 2026-10-2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