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통장보다 계약서가 더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아직 잔금이 남은 매매계약서, 세를 준 집의 임대차계약서, 지인의 대출에 서명한 보증 서류, 누군가에게 일을 맡긴 위임장까지. 가족은 이 계약들이 피상속인의 사망과 함께 끝났는지, 아니면 자신들에게 넘어왔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문서는 민법의 원칙인 포괄승계와 그 예외, 사망으로 끝나는 관계, 보증을 둘러싼 판례, 그리고 고인이 세입자였을 때 적용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규정을 차례로 살펴봅니다.
원칙: 계약상 자리도 함께 넘어옵니다
민법 제1005조에 따라 이어받는 사람은 상속이 시작된 때부터 고인의 재산에 관한 권리와 의무를 한꺼번에 넘겨받습니다. 여기에는 물건이나 돈만이 아니라 계약에서 생긴 자리도 들어갑니다.
- 고인이 집을 팔기로 하고 계약금을 받았다면, 이어받는 가족이 소유권을 넘겨줄 의무와 잔금을 받을 권리를 함께 갖습니다.
- 고인이 집주인이었다면 임대인의 자리와 함께 계약이 끝났을 때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도 넘어옵니다.
- 고인이 돈을 빌려주었다면 돌려받을 권리가, 빌렸다면 갚을 의무가 넘어옵니다.
그래서 피상속인이 당사자로 이름을 올린 계약서는 "끝난 서류"가 아니라 앞으로 이행해야 할 목록으로 읽어야 합니다. 잔금 날짜, 계약 만료일, 상대방 연락처를 표로 옮겨 두면 승인이나 포기를 정할 때 재산과 빚의 크기를 가늠하는 데도 쓰입니다.
예외: 사망으로 끝나는 관계
같은 조문 단서는 고인에게만 붙어 있던 것은 넘어가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민법은 사망으로 끝나는 관계를 개별 조문에 따로 적어 두기도 했습니다.
| 관계 | 사망하면 | 근거 |
|---|---|---|
| 위임 | 당사자 한쪽의 사망으로 위임이 끝남 | 민법 제690조 |
| 조합 | 사망한 조합원은 조합에서 탈퇴됨 | 민법 제717조 |
| 대리 | 본인이 사망하면 대리권이 소멸함 | 민법 제127조 |
실무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대리입니다. 고인이 생전에 써 준 위임장이나 인감을 가지고 가족이 은행이나 관공서 업무를 계속 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본인이 사망하면 대리권이 소멸하므로 그 위임장으로는 더 이상 고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사망 뒤에는 이어받는 사람의 지위에서 따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고인이 집 관리나 임대 업무를 누군가에게 맡겨 두었던 경우도 위임이 끝나므로, 그 일을 계속 맡길지는 이어받는 가족이 새로 정해야 합니다.
보증은 계약 내용에 따라 갈립니다
피상속인이 다른 사람의 빚을 보증했다면 결론은 보증계약의 내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법원은 일정 기간 계속 생기는 채무를 보증하는 계속적 보증계약을 두고 다음처럼 구분했습니다(대법원 2000다47187 판결).
- 보증한도액을 정한 계속적 보증 — 보증인이 사망했다고 계약이 당연히 끝나지 않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어받는 사람이 보증인의 자리를 승계합니다.
- 보증기간과 보증한도액을 모두 정하지 않은 계속적 보증 — 보증인의 자리 자체는 넘어가지 않고, 사망 전에 이미 생긴 보증채무만 넘어옵니다.
차이가 큰 만큼 보증 서류를 찾으면 한도액과 기간 칸부터 확인하세요. 주채무자가 지금 얼마를 빚지고 있는지, 고인이 숨질 때 이미 갚아야 할 금액이 확정되어 있었는지도 함께 알아봐야 합니다. 보증 서류는 고인 명의 재산 조회로 바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우편물과 금융회사 안내문을 꼼꼼히 살피는 편이 좋습니다.
고인이 세입자였다면: 주택 임차권의 승계
고인이 주택을 빌려 살던 세입자였다면 주택임대차보호법 제9조가 따로 적용됩니다. 법률혼이 아닌 동거인이나 함께 살던 친족을 보호하려는 규정입니다.
- 상속인 없이 사망한 경우 — 그 집에서 가정공동생활을 하던 사실혼 배우자가 임차인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합니다(제1항).
- 사망 당시 상속인이 그 집에서 함께 살지 않은 경우 — 함께 살던 사실혼 배우자와 2촌 이내 친족이 공동으로 승계합니다(제2항).
- 승계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임차인이 숨진 뒤 1개월 안에 임대인에게 그 뜻을 밝혀 승계에서 빠질 수 있습니다(제3항).
- 승계하면 임대차 관계에서 생긴 채권과 채무도 승계한 사람에게 돌아갑니다(제4항).
즉 같은 집에 살던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와 밀린 차임 같은 의무의 주인이 달라집니다. 반대 의사를 표시할지 고민된다면 1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달력에 먼저 적어 두세요.
자주 묻는 질문
Q. 고인의 대출에 가족이 연대보증을 섰다면 상속을 포기하면 끝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가족이 보증인으로서 지는 책임은 상속이 아니라 그 가족이 직접 맺은 보증계약에서 나온 것이므로, 포기를 해도 보증인의 책임은 따로 남을 수 있습니다.
Q. 피상속인에게 아직 들어오지 않은 돈은 누구 몫이 되나요?
A. 빌려준 돈이나 아직 받지 못한 매매 잔금 같은 권리도 이어받는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여럿이 함께 이어받았다면 누가 어떻게 받을지 정리가 필요하므로, 상대방에게 청구하기 전에 가족끼리 받을 사람과 몫을 먼저 맞춰 두세요.
Q. 고인이 맺은 휴대전화나 구독 서비스 계약은 어떻게 하나요?
A. 사망 전까지 쌓인 미납 요금은 고인의 빚으로 넘어올 수 있습니다. 해지 절차와 필요 서류는 회사마다 다르니 사망 사실을 알리고 안내를 받되, 고인 계좌에서 요금을 정리하는 문제는 고인 계좌 문서를 먼저 읽어 보세요.
정리
계약상 자리는 원칙적으로 이어지고, 위임·조합·대리처럼 사람에게 묶인 관계는 사망으로 끝납니다. 보증은 한도와 기간에 따라, 세입자의 임차권은 함께 살던 사람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다른 질문은 첫 화면에서 확인하세요.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의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근거: 민법 제127조·제690조·제717조·제1005조 [시행 2026. 3. 17.][법률 제21454호], 주택임대차보호법 제9조(사망 후 1개월 이내 반대 의사) [시행 2026. 1. 2.] — 국가법령정보센터 2026-10-20 확인 / 대법원 2001. 6. 12. 선고 2000다47187 판결(계속적 보증의 승계 범위) — 국가법령정보센터 판례 2026-10-20 확인